L.Beethoven - Piano Concerto No.3 op.37
Classical Music/Story of Pieces

L.Beethoven - Piano Concerto No.3 o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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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피아노 : 마우리치오 폴리니 | 지휘 : 카를 뵘

Piano : Maurizio Pollini | Conductor : Karl Böhm

 

 

모범적이고 강렬한 피아노 협주곡, 베토벤의 시작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3번을 1796년 즈음에 착수하여 1804년에 완성, 출판하였다.

초연은 베토벤 자신의 연주로 빈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 피아노 부분이 완성되지 않아 대부분이 베토벤의 즉흥 연주였다고 한다.

곡을 홍수처럼 쏟아냈던 모차르트와 달리, 베토벤은 한 곡 한 곡 긴 작곡 시간을 소요했던 편인데, 이런 긴 시간을 걸쳐서도 후술할 귓병과 음악적 고뇌 때문에 더욱이 곡의 완성을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빈의 청중들에게는 이 초연이 바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 시대적 탈을 벗은 장중하고 카리스마 있는 거인의 모습이 이때 처음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곡가에게 생명인 귀가 점점 안 들리기 시작하여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앓았던 베토벤은 1802년, 32세의 해에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여섯 달을 요양하게 된다.

그 시기를 전후하여 작곡된 이 곡은 그외 고뇌를 담아 장엄하며 비극적인 C 단조를 드리운다.

다음은 과연 이 시기가 베토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미루어 알 수 있도록 한 서술이다.

 

베토벤은 좌절의 해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두 동생 카를과 요한에게 편지를 쓴다.

“무능한 의사들 때문에 병은 점점 악화되고,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해가 거듭할수록 배신감으로 변했어. 그런 세월이 벌써 6년이야. 음악가로서 나만이 누릴 수 있었던 온전한 감각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겠어? 어떻게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주세요! 소리 질러주세요! 나는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어?” -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자신의 죽음을 상정하는 내용이 많고, 두 동생을 자신의 재산 상속자로 지정하는 등의 이유로 이 편지는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작성을 기점으로 다시금 삶을 살아갈 열정과 의지를 얻게 된다.

인생의 전환점과 함께 모험적이고 고집스러운 그의 작풍이 제대로 자리잡아 시대를 변화시키는 새싹을 틔웠다.

자연 속을 거닐며 바위, 화초, 새와 교감하며 음악적 아이디어들을 여럿 메모로 남기고, 앞으로의 베토벤스러운 음악의 작곡에 박차를 가했다.

후에 베토벤은 이 시기를 추억하며 교향곡 하나를 썼는데, 그것이 교향곡 제 6번, 그 당시 거의 금기와도 같았던 표제 음악으로서 다분히 표현적이어 낭만파 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한, <전원>이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베토벤의 다섯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하게 단조이다.

그것도 베토벤이 비극적인 주제를 삽입할 때 자주 사용하는 C 단조이다.

베토벤의 앞전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에 비해 상대적 명곡으로, 베토벤 스스로도 이 곡을 쓰고 난 뒤 매우 위대한 곡을 써냈다고 평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주축으로 하는 고전 시대 음악의 알을 깨고 부화하려는 베토벤의 몸짓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곡이기도 하다.

나중에 쓴 작품들에 비해서는 형식을 기존의 것을 답습하여(주제의 파격이 없는 엄격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에 정석적인 론도 형식을 지키는 3악장이다.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선보이는 독주 악기가 곡의 시작을 여는 양상도 3번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전통을 따라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다 제시할 때까지 독주 악기가 기다린다.) 그다지 파격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베토벤 특유의 주제의 잠재력을 한참 끌어내는 전개 능력이 드러난 1악장의 발전부그간의 음악의 정수가 농밀하게 응축되어 있는 카덴차, 2악장에서의 E장조로의 과감한 전조 등 충분히 선구자적인 첫 발걸음을 뗀 베토벤의 모습을 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카덴차의 경우 독주자의 자유재량으로 자신만의 기교를 뽐내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베토벤은 카덴차의 내용을 악보에 직접 지시하였다.

단순히 오케스트라의 침묵 속에서 독주자를 스포트라이팅하기 위함이 아니라 카덴차를 음악적으로도 기교적으로도 가장 절정인 대목으로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바로크 음악의 대위적인 성격이 미약하게 이 곡에서 부활하여 간단한 돌림노래적인 모습도 부분부분 보인다.

혹자는 베토벤이 제대로 된 푸가 하나도 못 쓰는 대위법에 취약한 작곡가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그가 자주 다루는 음악적 주제의 성격, 기존 대위법에 파격을 추구하던 태도를 감안해야 한다.

말년의 현악 4중주,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등에서 그의 진정한 대위적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곡에서는 그 초석이 된 일말의 시도들을 우연히 느끼면 된다.

 


 

나는 이 곡의 1악장을 매우 좋아한다.

음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주제일 수 밖에 없는데, 1악장의 제 1주제와 제 2주제 모두 맘에 들어 기억에 안 남을 라야 안 남을 수가 없다.

비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제 1주제,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제 2주제의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들이 내가 1악장을 찾게 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카덴차이다.

카덴차를 들을 때 농축된 주제들과 화려한 아르페지오를 지나, 격정적이고 리듬이 도드라지는 후반부가 해일처럼 몰려들면 늘 쾌감에 젖는다.

듣는 사람을 압도하는 박력과 화려함이다.

누군가가 현재 내가 낭만파 음악과 근현대 음악을 포함하여 알고 있는 모든 피아노 협주곡들 중에서, 이만치 귀를 사로잡는 카덴차를 꼽으라 하면, 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인데.. 하며 여러 곡들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베토벤은 음악의 호흡이 길게 끊이기 때문에 곡의 긴장이 순식간에 다가왔다가 사라지지 않고 서서히 존재감을 키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다른 작곡가들이 일반적으로 주제의 발전을 끊는 타이밍을 한참 늦추어 어쩌면 발전부가 곡의 주인이었나 싶은 듯, 방대한 음악적 확장을 한다.

거기에 더해 악절과 악절 사이가 끊기는 느낌이 들지 않고 다 개연성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베토벤이 음악을 전개하고 연결하는 방식이 매우 정교하기 때문이다.

곡 하나하나마다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은 결과이다.

정교함의 예시로 이 곡 1악장의 카덴차가 끝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이끔음-으뜸음의 일반적인 틀을 따르지 않고 단 2도에서 장 2도로 음정을 벌렸다가 다시 좁혀가며 상승해 3음에서 멈추는 트릴 화성 진행이 나타난다.

그 3음을 기점으로 조성은 곧바로 C 단조로 돌아오지 않고, C 장조를 거쳐 천천히 돌아와 코다를 제시하고 1악장을 마무리짓는다.

매우 참신하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 환기 전략이다.

이러한 독창성이 베토벤의 음악에는 산재해 있다.

베토벤은 자신만의 재료들로 후대 작곡가들이 누릴 시대의 고삐를 쥐고 아득히 먼 산을 넘어 이끌고 갔다.

이 곡이 그 시작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들으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참고

[Lonely Planet, 최정동의 Essay]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2020.11.04, 최정동)

[클래식음악블로그 필유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Op.37 : Maurizio Pollini·Wiener Philharmoniker·Karl Böhm (2006.11.16)

[고! 클래식 위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 37

[인천투데이] [사연이 있는 클래식]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그리고 부활  (2019.10.14, 문하연)